뉴스브라이튼, 창단 125주년... 몰락 위기서 유럽무대까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이 아스널을 홈으로 맞이하는 경기를 앞두고 창단 125주년을 기념했다. 1901년 6월 24일 브라이튼 십 스트리트의 한 펍에서 창단된 클럽은 20년 가까이 서던리그에서 뛰다 풋볼리그에 합류했고, 1979년 처음으로 1부 무대를 밟았다. 1983년 FA컵 결승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맞붙어 2-2 무승부를 거뒀지만 재경기에서 패했다.
클럽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기는 1990년대였다. 1995년 당시 회장 빌 아처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 때문에 1902년부터 홈구장으로 써온 골드스톤 그라운드를 매각했다. 팬들과의 상의도, 대체 구장 마련도 없었다. 1995-96시즌 마지막 홈경기는 격분한 팬 수천 명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시위를 벌이며 경기가 중단됐고, 이 과정에서 양쪽 크로스바가 모두 부러지기도 했다. 브라이튼은 1997년까지 골드스톤에 머물렀고, 이후 70마일 떨어진 질링엄에서 2시즌을 홈구장 없이 떠돌았다. 1997년에는 강등까지 27분을 남겨두는 위기도 겪었다. 1999년에야 브라이튼 시내로 돌아와 육상 트랙이 딸린 6000석 규모의 위드딘 스타디움에서 뛰기 시작했다.
서포터 폴 삼라는 BBC 스포츠에 "1983년 FA컵 결승 이후 선수들은 팔려나갔고 투자는 없었으며 골드스톤은 낡아갔고 관중은 줄어들었다"며 "이사회와 팬 사이에는 소통이 없었고 이사진은 계속 바뀌었다. 연속성도, 리더십도, 방향성도 없었다. 그야말로 방향키를 잃은 배였다"고 회상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 전 이사 데이비드 데이비스, 폴레인 구장 계획 불허를 뒤집은 당시 부총리 존 프레스콧, 클럽을 안정시킨 전 회장 딕 나이트 등이 없었다면 브라이튼은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매체는 짚었다.
반전의 중심에는 토니 블룸 현 회장이 있다. 브라이튼 태생으로 조부 해리가 전 부회장, 삼촌 레이가 이사를 지내는 등 클럽과 인연이 깊은 그는 금융과 베팅업에서 데이터를 활용해 부를 쌓은 사업가다. 2009년 회장에 취임한 블룸은 리그원(3부)에서 시작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스타디움 이전과 함께 클럽을 프리미어리그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꼽힌다. 지난 시즌 브라이튼의 평균 관중은 3만1000명을 넘어섰다.
브라이튼은 2023-24시즌 사상 첫 유럽대항전 무대를 밟았다. 당시 로베르토 데 제르비 감독은 아약스 원정을 앞두고 라커룸에서 "오늘 밤 이 경기장에는 브라이튼 팬 3000명이 있다. 하지만 도시에는 그 두 배가 넘는 팬들이 원정을 왔다"고 선수들을 독려했고, 팀은 2-0으로 승리했다. 지난달에는 노르웨이 트롬쇠 원정으로 두 번째 유럽대항전(컨퍼런스리그) 여정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올드 트래퍼드 원정에서 맨유를 꺾었는데, 최근 6번의 원정에서 5승째였다. 10년 연속 프리미어리그를 치르는 브라이튼은 4경기를 치른 현재 5위에 올라 있다.
마이크 케이브 스포팅 디렉터는 BBC 스포츠에 "15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브라이튼에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같은 축구클럽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며 "많은 직원과 팬들이 그 여정을 함께해 왔다. 우리의 책임은 앞으로 다가올 것들이 과거보다 더 나은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 회장은 아스널전 프로그램북에 실은 글에서 "1901년 이래 이 축구클럽은 우리 도시와 서식스 지역의 일부였다"며 "조부모가 자녀와 손주를 경기장에 데려왔고 테라스와 스탠드, 원정길에서 평생 우정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골드스톤을 잃었던 시절, 질링엄까지의 긴 원정, 위드딘 시절의 어려움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이 클럽을 버텨내게 한 것은 팬들의 의지였다. 모금함, 시위, 알비온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거부의 몸짓이었다. 이번 기념일은 그 서포터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